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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세대 고졸 생의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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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6회 작성일 20-06-2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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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고등학교에서 고졸(Abi)시험을 치루고 대학진학, 사회진출의 첫 발을 시작하기 전 대기하는 3-4 개월은 생애의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한다. 여행을 떠나거나 여행준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 하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 모든 꿈이 깨지는 불행이 닥친 해는 없었다. 몇몇 학생의 고민을 소개해 본다.

+ 18세의 T군:
원래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2-3 개월간 남미 아르젠틴, 칠리  여행을 계획했었다.  그 후에는 외국대학에서 수업하거나 파이롯이 된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원래 기계, 항공분야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제 꿈이 모두 깨졌다.
관심분야를  넓게 갖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인데, 우선 대학에 등록할 예정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최선의 결과를 찾아야 한다.

+  19세  B 군
지난 3개월의 혼란기가 내 졸업시험 점수에 불리하게 작용한것이 아니었다. 졸업파티 등에 바쁠 틈이 없이 구두시험준비를 해야 했다.  오히려 집중이 잘 됐다.  하여간 이 바쁜 와중에 시험준가 도움이 된것이 확실하다. 흥미있는 체험이었다.
졸업 후 록키산맥에서  스키교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불확실해 졌다. 그 밖에는 졸업후 외국대학을 택할 계획이었지만 이것도 확실성이 없어졌다. 졸업시험 후 넓은 세계로 향해 독립된 자립생활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어렵다. 모든 것을 천천히 해결하는것도 한가지 장점이라  생각한다.

18세 K 양
나는 7월 12일에는 남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3월말까지 고아원에서 자원봉사하며 의과대학 테스트를 준비하며 대학과정도 준비할 예정이었다.  계획을 갖는 자가 일을 많이한다는 원칙에 따라 나는 계획을 만드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무든것을 바꿨다.  학교를 떠난 5월 13일은 나에게는 쇽크였다. 갑자기 학교를 떠나야 했고  원래의 졸업파티가 있을때까지는 전통적인 이별파티도 없었다. 후에야 서로 1,5미터의 간격을 둔 졸업파티를 가졌다.  아프리카 방문은 5월 중순부터 불가능함을 알게 됐다.  이 아프리카 방문의 꿈은 1년 후에 실현한다는 꿈으로 변경됐다.  이를 계기로 나는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알게 됐다. 그래도 계획은 미리 꾸민다는 습관만은 계속 갖고 살겠다. 

+ + 17세  L  양
나는 친구와 함께 늘 공부도 함께 하고 졸업파티 준비도 진행중이었다. 돈도 걷고 음식 주문 그리고 카메라맨, DJ 까지 준비되었었다.  코로나 이후 물론 모든 예약은 취소되고 다행히 비용은 돌려 받았다.  파티는 수 개월 후나 1년 후로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실망은 너무 컸다.
졸업시험에는 코로나로 오히려 침착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사회생활에 엄격한 룰이 있는것에 대해 이해는 가지만 학교에서 졸업증 수여식도 없다는 것이 너무 서운했다. 나는 원래 8월에 볼리비아에서 자원봉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이제 2 개월 후에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후에는 의학공부가 시작된다.치과의사인 집안 전통을 이어 의학을 택했다.

+ 17세 J 양
그는 영리하고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면서 친구들을 매우 좋아한다.  가을 학기에 법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프랑크푸르트는 떠날 작정이다.  도시는 사랑하지만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다.  어떤 독특한 새로운 경험을 갖고 싶다. 코로나는 이런 점에서 나를 실망시켰다.
그는 사람들이 고졸 전후의 시기가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완전한 자유를  느끼며 몇 주, 몇 달동안 고뇌가 없는 시간을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할 의무는 완벽하게 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여름이 지날때  친구와 에쿠아도르에서 여성문제 상담소에서 일하고 에쿠아도르와 파나마 여행도 계획했었다. 언어도 단단히 준비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Abi-고졸- 파티를 계획했다. 코로나로 이제 나의 큰 포부를 잃은듯한 공허감이다.
대신 여름에 유럽 기차여행을 계획하고 있지만 생기있는 여행이 될런지 확신이 않 선다. 차라리 학교친구들과 졸업식파티를 갖고  즐거움을 나누고 싶기도 하다. 틀림없이 우리 코로나 동창생들과는 역사에 남는  동창으로  기억될 것이다.비록 위안이 되지는 않겠지만.

+  18세 J 군
학키선수로 거의 직업선수급인 그는 시험을 마친 후 시카고에 가서 학키트레너 경험을 가져보겠다는 포부가 컸지만  코로나 이후 언제 미국에 갈 수 있을런지도 불확실해졌다.  국내에서는 지금 인턴직도 용의치 않다.  현재 정규직원도 조업단축에 들어가는 데 실습생까지 둘 이유가 없다. 지금은 당분간 프랑크푸르트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직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장래문제에 관해서는 낙관적이다. 
 졸업시험에서 수학과 영어과목을 전공으로 택해 최고점을 받았고 대학에서는 경제수학을 택할 예정이다.  코로나로 인해 시험준비에 불리한 점은 없었다.  대학도서관이 일시 폐문상태였지만 대학본부 도서관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에서보다 더 효율적이었다.
그는 자기 여행목표에 관해서는  언어도 익히고 장래를 위해 인맥을 형성한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시험에서 오는 압력이 지나고 나니  코로나로 인한 사회,경제적 압력이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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